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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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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메르의 그림같은 풍경엔 책이…-

마을 버스가 내려준 마을 입구에서 황소만한 구식대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 뒤쪽의 못가로 나지막한 집들이 높은 느티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넓은 여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은 여기저기 연못 위로 수초가 떠다니고 그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젖어 있다. 마을을 우선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은 걸어 다니는 이들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다. 자전거가 지우개질하듯 휑하니 지나간 배경은 붉은 벽돌담이 절반이고 그 나머지는 책들이다. 호떡집이나 떡볶이 가게처럼 포장을 두른 좌판도 책들이다. 벽의 틈새에 낀 이끼도, 길가 모두 책을 꾸미는 띠 장식처럼 피어 있다.
골목에 비치된 상자와 선반에서 돈을 넣고 책을 집어가는 일종의 자율가판대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은 언젠가 한 번 와보았던 곳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빼곡하고 단정하게 마감된 벽돌담과 흰 페인트칠이 된 창문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정돈되고 온화해 보이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이 화가처럼 자기 시대 사람과 취향이 달랐으면서도 제 나라의 이미지를 좌지우지한 화가가 또 있을까? 아무튼 집집마다 바깥에 수레나 책장을 내놓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안내소에 나와 있는 기념품은 다른 책 마을보다 훨씬 다양했다. 바로 책을 집어넣을 수 있어 천 가방에는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가 새겨졌고, 짙은 남색 티셔츠는 가볍지만 질겨 보인다. 자리를 지키던 직원은 몇 해 전에 한국에서 책마을을 준비하는 대표단이 다녀갔다며 반색을 했다. 단지 우리나라 마을이 ‘새 책을 만드는’, 아주 새로운 출판단지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클라리넷’ 서점의 주인 펠트봄 부인이 배웅을 나왔다가 자기 서점 앞에서 쑥스러워 하며 포즈를 취했다.
검은 페인트로 벽을 칠한 카페 몇 집이 구석을 지키는 중앙 광장에는 ‘헨드리키에’의 아담한 입상이 서 있다. 그림 속의 풍만한 이미지는 아니고 성상처럼 단아하다. 헨드리키에는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의 두 번째 아내였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350년 전쯤에 시골처녀의 몸으로 마을을 떠나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다. 그녀는 당찬 행실로 화가를 내조하여 화가의 아내로서는 드물게 칭송을 받는다. 보통 예술가의 아내처럼 질투의 화신이기는커녕 늙고 주책없는 영감을 잘 보듬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리저리 얽힌 골목마다 책을 안 들여놓은 곳이 없다. 그 곁에는 영락없이 또 자전거가 쓰러져 있다. 골목길 나무상자에 담아놓은 책은 동전을 집어넣고 가져가면 된다. 가장 원시적이고 매력적인 자판기였다. 마을에는 영어 책방, 독일어 책방, 고전어 책방도 따로 있다. 음악책을 전문으로 하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 악보를 뒤적이다보면 17세기 홀란드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그림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악보 앞에서 현을 뜯고 노래하던 풍속화들이다. 고전어 책방 ‘스크리니움’에서는 청소년을 위해 고전읽기 같은 독서지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의 아내 헨드리키에의 입상이 광장에 서 있다 10대의 산골 처녀로 대처에서 활약하던 중년의 거물화가를 만나 그 아내가 되어 그림 속에 영원한 이미지를 남겼던 헨드리키에는 바로 이 마을 출신이다 마을 사람은 그녀를 거의 수호신처럼 여긴다.
렘브란트의 책은 역시 풍부하다. 죽어서도 마누라 덕을 톡톡히 보는 모양이다. 사후 300년을 추도하는 대회고전의 도록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모방해서 책읽는 노파상을 독립된 주제처럼 많이 그렸다. 그런가 하면 환상에 넘치는 문학으로 읽어도 좋은 성인전도 심심치 않게 꽂혀 있다. 자코포 다 보라지네의 ‘성인열전’,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랜 예수회 학술단체에서 펴낸 ‘볼란트 성인전’ 등 그 전기 또한 전설이 된 다양한 이본이 적지 않다. 번창하던 안트베르펜의 인쇄소에서 찍었던 것도 보인다. 용과 공주, 이국적인 복장과 괴물, 유혹과 번민, 허무한 기적과 차라리 후련하기 그지없는 이별, 애틋한 궁상이며 터무니 없는 위력으로 점철된 고전이다. 이런 신화가 풀어놓는 판타지의 재미에 빠지다보면 그 교훈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몇 백 년 전의 것이든, 요즘 것이든 책값을 매기는 그 기막힌 치밀함이라니! 종이칼로 잘라보아야 하지만 아직 칼로 베지 않아 새 책인 ‘묵은’ 책부터 소장자의 취향이나 서적상의 전략에 따라 표지를 갈아입힌 것, 저자 서명의 유무에 이르기까지 같은 연도, 같은 책도 값은 천차만별이다. 더구나 찢어진 자국이나 사소한 얼룩 숫자까지 따진 듯이 얼마나 정확하려고 애썼던지! 이 정도라면 손끝이 닿기만 해도 바삭 부서질 듯이 과자를 그렸고, 한 번 “후”하고 불기만 해도 굴러 떨어질 이슬을 그렸고, 부르튼 여인의 입술을 적셔주지 않고는 못견딜 만큼 촉각적으로 그렸던 이 나라 옛 화가들의 ‘덧없는(바니타스 정물화)’ 그림솜씨가 산술로 바뀌었다고나 해야 하지 않을까?.



















걷는 사람보다 자건거로 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 거리 뒤편의 외벽에는 책장과 수레가 설치되어 있다.


거장 베르메르의 책은 그 명성 때문에 여기에서도 중요한 시기의 책자는 흔치 않다. 워낙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고가의 것만 남았다. 그래도 화란어본은 꽤 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자화상을 집어넣은 가장 빼어난 화폭에서 이 화가는 모델의 가슴에 책 한 권을 안고서 포즈를 취하게 했다. 뮤즈의 다른 도구들은 한쪽에 제쳐놓은 채로….

이집 저집 뒤진 끝에 찾아낸 그의 불어판 전기 한 권의 뒷장 안쪽에 우표만큼 작은 크기에 황금잉크로 깨알같이 인쇄한 루앙 서점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책과 종이와 장난감을 함께 취급하는 집이다. 요즘처럼 스티커가 아니라 풀칠을 했다. 책뚜껑에 연필로 그 책이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왔는지 메모해 두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이런 서점딱지는 예외적이다. 풀칠하던 손길의 주인공은 이제 이 세상에 없겠지만 그 사람이 매만지던 그 모서리에서 눈길을 떼기가 어려웠다. 지금부터 90년 전까지는 이렇게 책을 귀히 여길 뿐 아니라 신성시하기까지 했던 옛날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세월이 가면, 흔히 ‘펜의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의 운명은 엇갈린다. 그러나 베르메르 같은 거장은 어떤 패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삶과 작품을 다룬 책은 어떤 장르에서든 패배를 모른다. 역사로서나 문체로서나 완승을 거두며 필독서가 된 사가, 비평가의 책들과 나란히, 대중의 호기심을 노린 허구로 윤색되어 “소설 쓰고 있네”라며 핀잔을 받던 책까지도 고가로 유통된다. 이렇게 변덕스럽고 오리무중인 대중취향이 승승장구하는 시대에는 치열하게 탐구하는 사람보다 입심 좋은 문인이 월계관을 쓴다.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화가 헤라르트 두가 그린 책 읽는 노부인의 초상이다 렘브란트는 성경을 읽는 어머니를 즐겨 그렸는데 이것을 모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속의 책에서는 당시 홀란드의 뛰어난 활판인쇄술을 엿볼 수 있다.
칼이 아니라 펜을 놀려 싸우는 평화로운 전쟁터는 지성과 감성의 다투는 터전이다. 거기에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느라고 무리수를 두었던 애국적 필자들은 이제 인기가 시들하다. 교과서적인 명성을 날리던 저술도 죽을 쑤고 있다. 한때 박식한 사가들은 위증을 위한 증거자료처럼 방대한 책을 써냈고, 이런 책들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다국어로 번역되곤 했다. 그런데도 한 세기도 안 된 지금은 헐값에도 찾는 사람이 없이 비만증에 걸려 병상에 누운 거물처럼 서가에 처박혀 있다.

1993년부터 시작되어 네덜란드에서 단 한 곳뿐인 이 책 마을은 지금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또 재기를 꿈꾸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기존에 해오던 행사와 장터 이외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 마을 전방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고서적 시장을 1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유서 깊은 한자동맹 도시인 데벤터, 네이메헨, 아르넴 등이 있다. 하지만 나라의 가장 동쪽 끝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변변한 배후가 없다. 있다면 아헨을 비롯한 독일 도시들이다. 네덜란드만 놓고 보자면 잘 나가는 서부 해안가와 남부 도시에 비해 관광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취약하다. 초기에 서른 집 가깝던 서점은 계속 줄어들었다. 이렇게 주변에 관광이나 사람을 끄는 소재가 넘쳐도 탈이지만 너무 없어도 탈이다.

마을에서는 여름 한철과 다른 철에는 매월 셋째 토요일마다 일종의 ‘자유시장’을 열어 마을 서점과 함께 어울려 누구나 와서 장을 벌일 수 있다. 기존의 장을 좀더 활발하게 하려고 각양각색의 민간단체와 협조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이를테면 ‘쥘 베른 클럽’이 이곳에서 행사를 갖고 장을 열었을 때 회원들이 가져온 책으로 난장을 펼치는 식이다. 전문성을 가미한 이런 행사의 반응은 상당했다. 그러니까 ‘아무개를 사랑하는 모임’ ‘같은 것도 모임을 갖는 한편, 비슷한 관심사와 주제를 다룬 책자를 들고 나와 교환하고 판매하는 즐거운 장터를 꾸밀 수 있다. 금년에 이 장터의 성과가 기대 이상이어서 이런 기획을 더욱 늘려나갈 예정이다.














학술서의 어려움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위 논문의 출간이 주종이지만 아예 필자가 컴퓨터로 제작해서 출판사에서 발행만 맡는 복사본에 가까운 레이저판 신간들도 벌써 중고서적에 끼어들었다. 또 학술서의 참패 때문에 애당초 문고본으로 나오는 훌륭한 저술들도 단순히 거품을 뺀 것 이상으로 검소해졌다. 이런 소박하고 저렴한 책이 우리 시대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지 않을까. 이런 문고본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화려한 편집의 기교를 사양하고, 학생들이 핸드백 대신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싶다며, 양장본 대신 초판부터 문고판을 고집하는 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클라리넷 서점을 지키는 할머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손수 작은 책을 만들던 중이었다. 이 훼방꾼에게 마을의 사정을 숨김없이 자상하게 들려주셨다. 비록 젊은이가 떠나기도 했지만 사는 것이 언제 지금만큼 어려웠더냐면서 죽는 날까지 책방을 지키겠다고 하셨다. 오는 여름에 데벤터에서 만나자고 클라리넷 이름을 새긴 볼펜 한 자루를 쥐어주셨다. 서점 앞에서 배웅하는 할머니에게 사진기를 들이대자 머쓱해하면서도 마다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헨드리키에의 입상이 겹쳐졌다. 셔터를 누를 때 슬그머니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이 마을 이야기만큼은 이 볼펜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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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대한여행사(대한여행사 admin)] 최종수정: 2011.06.01 조회: 1939